부산. 나와는 직접적인 연고가 하나도 없는 낯선 도시. 재호의 삶의 터전이 부산으로 바뀌었다는 한가지 이유로 10대의 끝자락 나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처음 몸을 싣었다. 부산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더 지나친 해운대 역에 내려버려서 밤12시가 더 지난 시간 재호 아버님과 재호가 차를타고 나를 데리러 와주었던 그 얼떨떨하고도 민망했던 여름밤. 그것이 나와 부산의 첫만남이었다.
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. 매년 내려온 이 곳은 이제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도시가 되어있다. 이제 재호뿐 아니라 아빠가 살고있는 곳이기도 해서 내게는 매년 더욱이 와야하고 올 수 밖에 없는 곳.
나의 가족과 같은 친구들과의 시간은 너무나 즐겁고 자유로웠고 이제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펼치게 될 빠듯한 시간으로 인해 지금껏 줄곧 만나왔던 만남이 기약없이 멈추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우리들 앞에 놓여진 미지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로 섞인 대화를 마지막으로 이 시간을 마무리했다.
떠나기 전 아빠와의 1시간 남짓의 식사와 대화는 나의 마음에 얇은 칼날이 스치듯 따끔하고도 아리다. 이제 나의 삶의 도화지에서 중심부가 아닌 가장자리로 밀려나서 보통은 인식하지않고 지내는, 그러나 마주할 때면 내 모든 인식의 시작이된 지점이라는 것을 깨닫게되는 아빠라는 존재.
무엇이든 잘 해드리고 싶지만... 특별히 경제적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 모습이 이토록 죄송할 수 없다.
저물어져 가는 저녁해를 보는 것 같다. 한 때는 정오의 가장 뜨겁고도 환한 빛과 같았던. 언제까지나 그러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존재의 생각보다 많이 낡고 부스러진 듯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. 그래 솔직한 표현으로 가슴이 아프다. 내가 지난 시간들을 딱히 잘 못 산것도 아닌데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울 만큼 가슴이 아프다...
부산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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